교육의 원칙을 나타낼 소책자를 쓸 사람은 없을 것인가?"에서 뒷날 자신의 나아갈 이상에 대해서 썼다.
1. 노이호프시대(Neuhof)
루소의 영향을 받아 4년간 관찰일기를 썼으며, 훗일의 직관을 중시하는 그의 교육원리가 시도되었다. 그리고 이 시기에 페스탈로치는 농사의 실패로 마을의 빈민 자제들
Ⅰ. 들어가는 말
아동은 자라는 동안 학업에 대한 부담이 없이 자유롭게 성장하고 자연과 친하여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부모들이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. 그런 면에서 루소와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이 현 사회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. 페스탈로치는 빈민교육을 주창하면서 학생 자신이 스스로의
교육적 시각에서 접근했다. 이것이 그의 저술가로서의 개성이었다. 사실 그는 ‘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’라는 농민소설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인데 이것은 교육에 뜻을 둔 어느 농민부부에 의한 농촌의 갱생을 그려내 ‘교육소설’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.
문필가로서의 성공은 그를 국민신문의 편
Ⅰ. 페스탈로치(페스탈로찌)의 인간관
그의 인간관은 첫째는, 모든 인간은 본질에서 평등하다는 점이다. 사람은 궁궐의 옥좌에 있거나, 오막살이 헌 집에 있거나 그 본질은 같다. 둘째로, 이 평등한 본질은 스스로의 힘, 즉 내면적 자아의 자율적인 자기 형성으로 발전한다고 본다. 교육이란 자기 발전
Ⅰ. 근대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(페스탈로찌)
페스탈로찌는 18세기 스위스의 교육개혁가로 근대교육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. 9세 때 라틴어 학교에 들어간 적이 있고, 자라서는 취리히 대학에서 신학과 법학을 같이 공부했다. 그러나 엉뚱하게도 농업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대학을 중퇴하여 농업에
Ⅰ. 페스탈로치교육(페스탈로찌교육)의 의미
그가 말하는 교육은 과연 무엇일가? 인간은 자질과 능력 등을 이미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교육은 그것을 올바로 꽃피울 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. 즉, 아예 없는 것을 개발해내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란
페스탈로치(1749~1827)는 17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아버지 요한과 어머니 수사네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. 아버지는 의사였으며, 어머니는 윤택한 명문 집안 출신이었다. 페스탈로치가 6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, 어머니는 일곱 자녀 중 살아남은 세 자녀를 교육시키기
교육에 전념한 페스탈로치. 그는 1827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.
페스탈로치의 생애 중에서 우리가 특히 음미해야 할 세 가지를 끝으로 들어 본다. 그 첫째는 교육사상 최초로 그가 교직단체를 창설한 일이다. 페스탈로치 전기연구가 모르프(H. Morf)는 이 교직단체 창설동기를 이렇게 간단명
Ⅱ. 페스탈로치의 사상적 배경
1) 인간관
페스탈로치는 인간교육의 성과는 인간을 완전하게 연구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여 인간성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. 그가 바라본 인간은 인간성 삼단층론에 의해서 세 가지 상태로 구분하였다. 바로 자연적 상태, 사회적 상태, 도덕적 상태이다.
① 자연적 상
페스탈로치 생애와 교육사상 및 페스탈로치교육사상의 시사점
1. 페스탈로치(Johann Heinrich Pestalozzi)의 생애
페스탈로치는 1746년 1월 12일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신교의 목사인 조부, 외과 의사였던 부친 Johan Heinrich Pestalozzi와 모친 Susanna holz Wadenswill의 차남으로 태어났다. 그리고 여섯 살 때에 아버지